형태의 점진적 변형
조형 예술의 모든 장르 중 스케치는 예술가의 상상력과 순간적 착상, 그리고 개 인적 필체가 특별히 직접적이고 생생한 방식으로 형태를 얻을 수 있는 분야다. 작가 강성희의 작품에서 스케치는 오래 전부터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 그녀의 수많은 스케치와 스케치 모음집들은 선으로 창조된 형태가 아주 고유하고도 풍부 한 조화로운 우주를 이루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부드럽고 균일하게 그어진 연필선들은 배치된 형태가 단순하면서도 시적으로 압축된 속성을 지닌 형태를 표현해 내고 있다.
간략한 특성만으로 암시되고 있는 육체의 형상들 속에서는 매우 주관적인 상상의 세계가 강하게 표현되고 있으며,그것이 지닌 고도의 추상성과 단순성은 감상하 는 사람에게도 그 형상을 생겨나게 하는 내적 환상의 영역을 자극하게 만든다. 강성희에 의해 창조된 공생관계의 생명체와 변이 형태들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 능해 보인다. 여기에서는 동물들이 머리들 위에 자리를 잡고 있거나 인간의 형태 와 식물의 형태가 하나로 서로 엉켜 들어갈 수도 있다. 아주 필요한 것만을 감각적인 선을 통해 암시함으로써 작가는 상상력 뿐 아니라 하얀 종이 공간에도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해준다. 그 여백은 그어진 선을 통해서 활기를 얻게 되며, 그 과정에서 여백은 형태 창조의 수동적인 수단으로부터 형태 의 핵심적인 요소로 변화한다. 종이의 오른쪽 하얀 가장자리와 커다란 화폭에 그 려진 형상들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밝고 투명한 색채 부분은 선으로 그려졌거나 색을 입힌 장면들과 함께 상상이라는 넓고 불확정적인 공간의 효과를 연출해내며, 여기에서는 경험세계의 법칙이 자리를 잃고 만다.
창조된 형체는 중력과 인과성에서 벗어나 공중을 떠다닌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뿐 아니라 의미론적으로도 그렇다. 작가의 환상은 타고난 재능과 짝을 이루어, 몇개 되지 않는 요소들로부터 극히 서로 다른 표현의 뉴앙스가 중첩되는 은유적이고 다의적인 상황과 상황의 구조를 창조해낸다. 무시무시한 것과 수수께끼 같은것이 자주 장난스럽거나 그로테스크한 것과 혼합되며 엄격한 고대 풍의 형체들이 반어적이고 밝은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개별적 형체에 집중하고 중층의 머리 형태를 강조함으로써 조그마한 스케치들 조 차도 기념비적 효과를 내고 있다.
작가가 종이에 구멍을 내어 만든 선들은 특별한 형태를 연출한다. 여기에서 중단 없이 이어지는 연필 선들은 얇은 바늘 선이 만들어내는 동일한 리듬으로 변화한다. 종이는 물질적 몸으로서 놀이를 시작하며, 연필로 그어진 선에 비해 힘이 들게 새겨진 연속적인 선들은 그 선으로 생겨나는 형상들에게 특별한 응축성과 집중성을 부여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많은 작업들에서 나타나는 금욕적 단순화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상승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형태들은 두 가지 종류의 여백, 즉 종이면과 그 종이면의 부정이라 할 수 있는 구멍이 서로 작용함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다.
엄격한 형태가 진정한 의미에서 물 흐르듯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성희의 수채화와 아크릴화는 보여준다. 특별히 아크릴화들은 작가가 색채의 표현 가능성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투명한 색으로 엷게 입혀진 것은 회화의 차원에서 떠다니는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스케치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강조된다. 그리고 기념비적인 모멘트는 많은 대형 아크릴화에서 대략 머리의 형태가 그림 높이의 3분의 2을 차지하게 되면서 직접적으로 활성화된다.
조그만 크기의 화폭에 그려진 일련의 새로운 유화들에서 작가는 색채와 형태, 그리고 그 그림의 배열을 매우 체계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림의 구조는 엄격한 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엷은 색들이 서로 겹쳐지지는 부분들은 유기적이고 밝은 형체의 요소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강성희는 파랑과 노랑, 그리고 자주색이 주로 쓰인 이 그림들에다가 형태상 정확히 그에 상응하는 제 2의 그림들을 회색의 톤으로 그려놓고 있다. 기하학적 형태를 갖춘 색채면과 대조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형체를 지닌 유기적 모티브들과 비밀스러운 상징 언어를 엠블럼화한 기호들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비교적 커다란 그림 부분에 병렬적으로 걸려있는 이 작품들은 거의 장식품과 같은 성격을 띄게 된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서로 다른 유형의 개별적 그림들이 밝음/ 어두움, 기하학적/ 유기적, 또는 구성적/ 헝체적과 같은 대조를 동일한 리듬으로 구성한 영역에 덧붙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위 개념적인 회화 기법을 통해 강성희는 그녀가 지금까지 해왔던 원초적이고 직관적 창작방식을 보다 더 심화된 성찰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기호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발견된 구상적 형상을 작가가 채색된 구조적 형상으로 변형시키는 가운데 직관과 계산된 사고는 새로운 종합으로 통합된다.
토마스 폰 타쉬츠키 / 미술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