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꿈 또는(사라진)통일성을 향한 동경
회회는 서구 예술의 전통에서 늦어도 르네상스 이래로 무엇보다 개인적 정서를 표현한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잊기 쉬운 것은 화가가 유일무이한 개인이 아니며 그의 모든 감정적 움직임과 독창성은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문화적 중개를 거치지 않은 개인적 경험이란 없다는 것이 사람들이 얻은 통찰이다. 이 피할 수 없는 심리적 사실은 무엇보다 한 사람이 두 문화의 영향속에서 성장한 경우 흥미로운 것이 된다.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강성희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걷기와 말하기와 보기를 배웠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그곳에서 사물과 타인, 그리고 자신과 교류하는 가운데 처음으로 무엇이 스스로 당연하고 확실한 것인지를 배웠다. 그녀가 13세가 되던 해 그녀의 어머니는 일을 위해 독일로 옮겨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강성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성장의 괴정이 채 끝나기 전에 그녀는 이제까지 살와왔던 환경과 고향, 그녀의 언어와 일상의 행동들과의 친숙한 관계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독일의 도시 피어젠(Viersen)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많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서서히 새로운 것과 친근해져 갔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오랜 동안 독일을 낯설게 느꼈어요. 다른 문화 속에서의 낯선 언어와 낯선 교류 형식들 때문이었지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어요." 40년이 지난 오늘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평안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에서 나는 집에 있는 듯한 평안함을 느낍니다." 그녀가 말하는 곳은 그녀의 이틀리에이자 그녀가 20년 전부터 살면서 부드러우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스케치와 그림들, 조각들을 창조한 쾰른 님부에 있는 그녀의 거주지이다. 그녀의 예술작품들은 수 천년 전부터 예술을 그처럼 유혹적이고 매혹적이며, 그처럼 비밀스럽고 선명하게 압박하듯 보이게 만드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녀의 예술작품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녀가 두 개의 전혀 다른 문화적 영향권에서 성장했다는 점을 강하게 반영한다. 그 예술작품들에는 하나의 문화권인 한국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 경험의 성격이 정해졌으면서도 동시에 어린 시절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그녀와 단절되었다는 점이 반영되어 있으며, 다른 문화권인 독일에서 모든 사람들처럼 사춘기의 나이에 자유에의 의지와 의식적 자아관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예술을 그녀를 구성하는 요소로 발견하였다는 점이 반영되어 있다. 그녀는 쾰른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려고 일단 디자인에 관심을 갖기 시직했다. 예술적 형상화의 영역이 그녀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조각가였다. 그럼에도 회화 형식의 예술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었으며, 그 안에서 그녀는 상이한 문화 속에서 그녀의 삶이 취했던 전혀 다른 영향들을 하나로 흐르게 하면서 일종의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열린 통일성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그림들 속에서는 많은 하얀 색과 열려 있는 많은 공간이 형체들과 대상들 주변을 둘러싸면서 그 형체와 대상들이 항상 떠다니는 상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흡사 형체들이 아주 은밀하게 그들의 형상들 안으로 날아 들어가는 듯하다. 그것이 형체들인지 이니면 어떤 형식들인지, 생겨나는 중인지 사라지려는 것인지도 알기 어렵다. 강성희의 색 사용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흰색과 회색의 색조가 기본 음조를 이루며 화가는 그것에 빨강이나 파랑, 또는 약한 노랑으로 강조한 부분들을 덧붙인다. 너무 많은 색채와 너무 많은 변화는 그녀가 추구하는 일관성의 감정을 위협할 것 같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일관성이다. 그것은 그녀의 회화 또는 스케치 과정의 처음과 끝에 동일하게 나타닌다. 강성희는 기본적으로 직관적으로 작업한다. 형상은 그리는 과정에서 점차로 생겨난다. 그리고 사실상 그녀의 형상들은 마치 꿈처럼 낯의 체험들과 기억들,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접근하기 어려우면서도 흐르듯 서로 뒤섞이며 "연관 없는 연관관계" 를 만들어냄으로써 밤에 꾸는 우리의 꿈을 생각나게 한다. 그것들은 희망이자 두려움들이며, 희극적이면서도 동시에 극적인 모티브들을 통해 서로 섞일 수 없는 양가적인 것들을 우리 영혼의 움직임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온갖 종류의 복합적 상황들이다. 무의식적인 것들이 그녀의 형상들의 창조에 함께 작용하며 강성희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이 과정에 온전한 신뢰를 지니고 있다. 인간들과 동물들이 그녀의 형상들의 중심에 서있다. 그리고 자주 인간과 동물들은 상대의 영역으로 넘어간 존재들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존재들은 극히 어색하고 상처받기 쉽다. 그리고 그들이 몬스터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때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외적 상황들과 자신의 욕망의 힘들에 의해 움직이며, 포위된 상태와 사방으로 자신을 펼쳐나가는 상태의 사이 존재들이다. 강성희는 그녀의 예술 속에서 어린아이의 형상언어를 표현주의적 회화와 스케치의 요소를 담았으면서 또한 앙리 미쇼(Henri Michaux)같은 아웃사이더 예술가의 폭발하는 듯한 형상적 비구속성의 모든 요소들을 담은 자유로운 형체의 탁월한 구성과 아주 훌륭하게 결합시킨다.
강성희는 그녀의 그림들을 통해 역사와 꿈과 동화를이야가한다. 그 모든 것들은 파악 불가능한 것들을 다룬다. 그것들은 말로 할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우리 일상적 이성의 저편 영역에서 전개되는 역사들이며, 그러면서도 우리 일상의 불안과 희망들 부조리와 불확실성들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역사들이다. 우리는 인생을(더 잘)견디기 위해 인생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강성희가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가 모든 방향으로 이끌려가는 감정적 동요들 사이에서 우리 인생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예술작품을 다룬다. 심리적 의도 없이도 강성희는 매우 심리적인 형상들을 창조한다. 불안정과 분열도 그 안에서 나타난다. 동경과 다다르지 못함, 두려움과 용기가 공공연하게 서로 충돌한다. 드물지 않게 인간이 갇혀있는 자로 나타난다. 그리고는 다시 새처럼 지상에서 벗어나는 확신에 찬 존재로 나타난다. 그녀는 삶의 무거움을 회화의 가벼움과 마주 세운다. 마치 회화는 항상 세상의 딱딱한 사실들을 넘어설 수 있는 "전략" 인듯하다. 강성희에게는 자신의 감성의 가장 섬세한 동요까지도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그가 현재에 주의를 집중할 뿐 아니 라 어린 시절의 경험들과도 접촉하고 있음을 뜻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잃어버릴 수 없음을 그녀의 그림들은 보여준다. 어떤 사람이 두 개의 문화적 영향권에서 성장했다면 이 경험들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전체 삶을 결정하게 된다. 회화라는 예술적 표현속에서 이 경험들의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차원들이 가시적이 될 뿐 아니라 양 문화들 사이를 오가는 여성의 삶 속에서 기본적으로 말로 할수없는 것들이 아마도 가장 잘 표현되는 듯하다. 강성희가 회회를 통해 하려는 것은 사라진 통일성의 추구이자 새로운 통일성의 추구이다.
또한 아주 개인적인 형상언어를 통해 그녀는 두 가지 문화의 무게를 지닌 삶은 어쩔 수 없이 전통적 문화 개념의 협소함을 넘어설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기도한다.
위르겐 키스터스
번역 전동열 (홍익대학교 독문학교수)